터키+그리스 여행(8일째)
여행 마지막 날이다 처음에는 해외여행이 기대감속에 시작되지만 가면 갈수록 몸도 피곤하고 음식도 안맞아 집에 가고픈 마음이 간절하게 마련이다. 일정에 마지막 코스인 성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를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버스 안에서 이스탄불 시내거리를 찍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스탄불도 출,퇴근 시간에는붐볐다.
블루모스크와 성소피아성당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가운데 히드포럼 경기장이 있었다. 먼저 블루모스크를 구경했다. 블루모스는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직경이 27.5m, 높이가 43m에 다다르는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규모면에서 터키 최대의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양식을 모방, 발전시켜 건축한 독특한 형상의 회교사원이다. 그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다. 돔의 200개가 넘는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찍은것 중에매우 맘에 드는 사진중의 하나다 ㅋㅋ
이스탄불의 상징, 성소피아 사원 성소피아 박물관은 마치 이스탄불에 산재해 있는 여느 모스크와 비슷해 보인다. 간혹 사람들은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아주 흡사하다고 느낄것이다. 하지만 성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성소피아 성당이라는 가장 최초의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듯 이곳은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성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 곳에 거하기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 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년-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성소피아 사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이 곳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을 둘러싸는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안에는 회칠로 덮여 이슬람교의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다. 회칠속으로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모두 사라졌다.
이후 복원작업이 진행되면서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지만 현재 그 복원작업도 중단된 상태이다. 성소피아성당의 중앙에 서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성소피아 성당 밖에 전시된 유물들
히포드럼(마차경기장 HIPPODROME) 본래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의 광장 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곳에는 아주 귀중한 세 개의 기념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5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한 사원에 세워졌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셀팬타인 기둥(Serpentine)이 있다.
여름에 왕족들의 별장이었던 대리석을 사용한 내벽이 호화로운 베이레르베이궁전을 방문하였다.이 궁전은1865년 압둘라지스왕 집권 시 건축가 바리안에 의해 세워졌다. 이 궁전의 모양은 직사각형의 2층 건물이며, 두개의 대리석 누각이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이 누각들을 돋보이게 만든다.
궁전 내에는 24개의 방과 6개의 홀이 있다. 이탈리아, 블란서, 터키 예술가들이 천장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 궁전에는 난방 시설이 없다. 왜냐하면, 왕족들의 여름 별장용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청동으로 입힌 문들은 마호가니, 호두나무, 오우크나무로 만들어져있다. 예쁜 손잡이는 이스탄불의 열드즈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 건물을 해안에서 보았을 때에, 왼쪽으로 하렘(여자궁전)이 있고, 오른쪽에 남자들의 공간이 있으며, 각층에는 큰 홀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왕들은 이 궁전에 손님을 숙박시키곤 했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즈 조셉, 영국의 에드워드 8세, 페르시아의 나시레닌’ 등이 이스탄불을 방문하면서 이 궁전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또 압둘메지트 2세가 살로니카 망명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그가 죽을 때까지(1918년) 이곳에서 살았다.
첫째 방은 보헤미안 크리스털 샹들리에로 장식되었고, 이집트산 매트레스가 궁전의 바닥에 깔려있어 습기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두개의 일본 화병이 있고, 압듈라지즈 왕과 압둘하미트 2세가 살던 방, 접견실, 왕의 부인과 어머니가 사용하던 많은 아름다운 방들과 가구들이 이 궁전 안에 있다.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기까지 시간이 남아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여기서 싸고 기념품이 될 만한 물건들을 구입하였는데 물건 흥정을 많게는 50%까지 하고 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싸게 구입한 생각이 안들었다. 하지만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보스프러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넓은 곳의 폭이 3500m, 좁은 곳이 700m로, 양측 해안에는 고대 유적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통적인 터키 마을, 울창한 숲 등이 곳곳에 있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음식점, 찻집, 별장 등이 있는 매우 조용하고 분위기가 있는 곳이였다.
비행기 시간이 조금 남아 우리나라의 명동거리라 할 수 있는 닥스거리를 구경했는데 마침 터키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어 내가 맡고 있는 업무라 차후에 사용하게 될지 몰라 찍었다 이렇게 8박9일간의 터키+그리스의 모든 여행일정이 끝났다.